Criticism-2017

J.
자연 환경과 인간, 그리고 문명


윤진섭
Yoon Jin Sub – 미술평론가_Critic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하고 호주 웨스턴 시드니 대학에서 미술사와 미술비평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장, 국제미술평론가협회(AICA) 부회장 겸 AICA KOREA 2014 조직위원장, 시드니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를 역임하였다.
Yoon Jin Sup is an art critic, curator, artist based in Seoul, Korea. He holds a BA in Western painting , and an MA in Aesthetics from Hongik University and a doctorate in Phiosophy from University of Westen Sydney in Australia.
He served as Vice president of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Art Critics(AICA) and President of AICA KOREA 2014 and an honorary professor of Sydney College of the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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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전라도와 경상도를 아우르는 지리산은 한국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땅이다. 해방공간에서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거창에서 발생한 ‘거창양민학살사건’은 해방 이후 한반도를 분열시킨 좌ㆍ우익 간 이념전쟁의 산물이다. 이병주의 소설 <지리산>을 비롯하여 영화 <남부군>의 무대이기도 한 지리산은 경상남도의 하동과 전라남도의 구례가 섬진강이 잔잔하게 흐르는 화개장터 부근에서 정겹게 손을 마주 잡는 곳이다. 사람들은 지역 이기주의에 발목이 잡혀 때로는 얼굴을 붉히며 으르렁대기도 하지만, 자연은 인간의 그런 반목과는 무관하게 눈 한 번 흘기지 않고 우주적 순환을 반복한다. 봄에 꽃이 피고, 여름에 푸른 잎이 번성하다 가을에 예쁜 낙엽이 떨어지면, 겨울에 천지는 하얀 눈을 뒤집어 쓴 채 돌아올 새 봄을 기다린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세상이 예전과 갖지 않다. 자연의 질서에 이상이 생긴 듯 지구 온난화 현상이 피부로 느껴진다. 봄이 언제 지나갔나 싶은데 어느덧 여름이 찾아오는가 하면,때 이른 벚꽃이 활짝 펴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최근 들어 부쩍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자연 생태계의 교란은 이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인류의 과제가 되고 있다. 어디 생태계의 문제뿐인가? 인간에 의해 저질러지는 자연파괴는 보다 빠르게 후폭풍이 돼 그 반대급부로 찾아온다는 점에서 인간 삶의 모태인 자연보호가 더욱 절실한 시점이다.

Ⅱ. 1992년 지방자치제의 실시 이후, 전국의 각 지자체들은 앞 다투어 문화예술 행사를 개최해 왔다. 그러나 비엔날레를 비롯한 대부분의 문화예술 축제들은 지역의 특성을 살리지 못함으로써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언론의 따가운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이처럼 비생산적인 축제의 범람은 결국 아까운 혈세의 낭비라는 측면에서 재고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즉, 어떻게 하면 독창적이고 지역의 특징이 잘 드러난 축제를 개발하느냐 하는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차에 경상남도 하동군이 <지리산국제환경예술제(JIIAF 2017)> (이하 ‘JIIAF2017’로 칭함)를 초청하여 자연과 환경의 문제에 시선을 돌려 예술을 자연에 접맥시킨 독자적인 문화예술 행사를 개최한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이다.

작년에 이어 <JIIAF 2017>는 지리산이라는 천혜의 자연조건을 이용하여 ‘예술과 자연이 조화롭게 하나가 되는 축제’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환경 친화적이며, 축제를 통해 자연의 의미를 되새기고, 자연과 인간의 공생관계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미래지향적인 행사이다.

<JIIAF 2017>이 지닌 또 하나의 장점은 오염되지 않은 ‘생태계의 보고’인 지리산에서 개최된다는 점이다. 이는 곧 천혜의 자연 자원을 지닌 하동군의 입지적 조건이 그렇지 못한 다른 지역에 비해서 월등히 좋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지리산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세상에 알림으로써 현재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자연의 생태적 보존’에 대한 문제를 이슈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프랑스 출신의 자연미술가 에릭 사마크(Erik Samakh)의 참가는 이 예술제의 운영 방식과 미래적 비전에 비쳐볼 때, 하나의 시금석이 돼 준다. 즉 이제까지 비엔날레와 같은 국제미술제들이 완성된 작품을 전시장에 진열한 후 감상하는 차원에 머물렀다면, 이 예술제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작가가 직접 현지에 머물며 작품을 구상하고 제작하는 ‘과정(process)’ 중심의 행사이기 때문이다. 제1회 <지리산 국제자연환경예술제>에 참가하여 지리산 하동의 특산물인 차(茶)와 자연석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대지예술 작품을 연출하여 호평을 받은 바 있는 크리스 드루리(Chris Drury)와 함께 이번 에릭 사마크의 참가는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이 행사에 일종의 방향성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Ⅲ. 이 행사가 성공을 거두려면 원대한 계획 아래 지속성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지자체 단체장 선거와 무관하게 항상성을 가지고 최소한 20여년, 아니 백 년 후의 모습을 머리속에 그리며 국내외를 막론하고 실력이 검증된 자연미술가들을 초대,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문자 그대로 친환경적인 ‘생태자연예술공원’을 조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우리의 자연이 이처럼 황폐하게 된 이유는 60년대 이후 전개된 근대화 정책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소위 발전 논리를 앞세운 ‘조국근대화 정책’은 부국(富國)의 효과를 가져왔지만, 그 반대급부로 인간의 생존 조건인 자연을 잃는 결과를 초래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개발도상국가들이 겪는 현대화의 모순(paradox)이며, 그 점에 있어서는 서구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소위 진보를 앞세운 근대화의 프로젝트는 서구를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문명권으로 만들었지만, 지구를 황폐화시킨 주범으로 낙인찍히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경제발전을 앞세운 무차별적인 개발 논리가 아마존 삼림지대를 비롯하여 지구촌 곳곳에 존재하는 천연의 자연환경을 황폐화시킨 주범임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다. 아프리카의 밀림지대를 비롯하여 동남아시아의 울창한 숲, 시베리아 지역의 툰드라 삼림 등 거대한 천연자원이 무참히 도륙되는 현장은 인체에 비유하면 허파에 구멍이 뚫리는 것과도 같다. 얻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이미 잃어버린 자연을 과연 어떻게 하면 복원시키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된다.

‘현대화(modernization)’의 프로젝트는 마치 전속력으로 달리는 열차와도 같아서 필요하다고 해서 아무 때나 제동을 걸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일단 여기에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발전의 가시적 효과에 취해서 환상에 젖게 되는 것이다. 자연환경과 관련시켜 볼 때, 지금 지구촌의 현안들 가운데 하나인 ‘기후변화협약’은 지구를 위기적 상황에서 구출하고자 하는 국제사회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JIIAF>는 이처럼 자연보호가 세계적인 의제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경상남도 하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조촐한 예술제이다. 그러나 비록 작고 조촐하기는 하지만 그 의의는 매우 크다. 그 이유는 이 예술제가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한반도를 벗어나 세계적으로 지구촌이 직면한 ‘자연과 생태’의 문제를 환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예술제가 추구하는 목표가 철저히 친환경적이며 친생태적인 방향으로 설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더욱 중요한 것은 그러한 목표에 따라 행사를 전개해 나가는 데 있어서 지켜야 할 ‘실천윤리’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거기에 ‘개발의 논리’가 스며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이러한 원칙이 반드시 지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자연(自然)’은 ‘스스로 그러하다’는 의미를 함유하고 있다. 돌 하나도 스스로 거기에 있는 것이며, 풀 한 포기, 나무 하나도 스스로 거기에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다. 노자가 말한 ‘도법자연(道法自然)’의 이치에서 벗어난 것이 하나도 없다. 범우주적 시각에서 보자면, 지구의 온난화 현상은 인간이 저지른 횡포 때문에 자연이 신열을 앓는 것에 다름 아니다.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지는 현상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Ⅳ. 이번 행사의 개막식에서는 다채로운 공연예술(performing arts) 프로그램이 펼쳐졌으며, 미술전시회는 김선태, 가람김성수, 문선희, 손정희, 오용석, 이경호, 이이남, Joseph Pang 등 현재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돼 축제 분위기를 한껏 돋우었다. 축제가 흥을 통해 마을 공동체 구성원들의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는데 기여하는 문화적 기제임을 상기한다면, 이 행사를 축제 분위기로 ‘둘러친(framing)’ 기획 의도는 주목할 만한 하다. 축제를 통해 공동체는 거듭나며, 축제적 신명을 통해 구성원들은 몸과 마음의 일체감을 거듭 느낄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빅터 터너(Victor Turner)의 말을 빌리자면, 그렇게 함으로써 공동체는 어제의 과오를 반성하고 희망에 가득 찬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빅터 터너가 말 것처럼 이 예술제는 이제 반성과 희망이 교차하는 지점, 즉 ‘문지방(threshold)’에 위치해 있다. 그것을 미래의 문화적 비전을 위한 계기로 삼느냐 아니면 과거로 다시 퇴행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행사를 운영하는 주체의 마음에 달려있다. <JIIAF>에 거는 기대가 큰 만큼 부디 이 당부를 잊지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