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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지이아프(JIIAF), 비가역성을 지향하는 ‘다시’의 생태학
김성호 KIM Sung-Ho – 미술평론가_Critic
중앙대 서양화과, 동 예술대학원 문화예술학과 졸업
파리1대학교 미학예술학 박사
모란미술관 큐레이터, 미술세계 편집장, 쿤스트독미술연구소장
성남문화재단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겸임교수
2008 창원아시아술제 전시감독2014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전시총감독
2015 바다미술제 전시감독
2016 순천만국제자연환경미술제 총감독
2018 다카르비엔날레 한국특별전 예술감독
저서로『 큐레이터 이원일 평전』 (사문난적, 2015) 등 5권의 미술평론집을 출간
현재, 미술평론가 및 독립큐레이터.
2019 JIIAF 개요
올해도 어김없이 지이아프(JIIAF)《지리산국제환경예술제》가 선보인다. 올해는 《2019지리산국제환경예술제 & 대한민국환경생태미술대전(Jirisan(Mt.) International Arts Festa & Award 2019)》이라는 이름으로 마련되었다. 작년의 《대한민국환경디자인대전》을 《대한민국환경생태미술대전》으로 이름을 바꾼 까닭은 지이아프의 미래적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 제1회에는 ‘대한민국환경생태디자인대전’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다가, 제3회인 2018년부터 ‘생태’라는 용어를 빼고 진행하다가 올해 다시 이 용어를 복원했기 때문이다. 대중에게 아직은 낯선 생태학 혹은 생태미학의 관점을 접고 비교적 친숙한 자연환경을 내세우는데 집중하고자 했던 작년의 관점에서 벗어나 올해 ‘생태’라는 용어를 복원한 것은 애초의 초심으로 되돌아가려는 시도로 읽힌다. 아울러 아직은 디자인 분야에 국한해서 대전을 펼치고 있기는 하지만, 제목을 생태학적 지평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향후 이 미술대전이 보다 더 다양한 장르로 확장하게 될 것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먼저 국제 교류 초대전 《2019지리산국제환경예술제》에는 케비나조 스미스(Kevina-jo-Smith)가 퍼포먼스로 참여했고 강상훈, 강운, 가람김성수, 문순우, 윤진섭, 이경호, 이명호, 임영선, 전경선이 생태 주제를 탐구한 작품들을 출품했다. 또한 전체 행사의 한 섹션을 구성하는 《레지던시 초대 작가전》에는 케비나조 스미스가 그간의 레지던시 결과 보고전을 선보인다. 또 다른 한 섹션에는 《대한민국환경생태미술대전 수상작가전》이 선보인다.
한편, 경남 하동에서 펼쳐진 제1부 전시(지리산아트팜 현대미술관, 10. 8~11. 7)에서는 특별히 “기후 변화 시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전 법무부 장관이자 현 ‘지구와 사람’ 대표인 강금실 변호사의 강연이 펼쳐지는 ‘환경 포럼’이 열렸다. 서울 전시인 제2부 전시(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전시실, 11.16~11.23)에서는 1부 전시가 고스란히 이동하고 출품작의 다른 버전이 추가되거나, 또 다른 프로그램이 추가된다.
II. 2019 JIIAF 주제 – 회복(回復) : 다시 숨, 쉬다
지이아프는 출발부터 ‘일상의 예술’을 부제로 내세웠다. 지이아프의 초심이, ‘일상이 곧 예술이자 예술이 곧 일상’인 오늘날의 예술 현장을 인식하는 가운데 이 중심에 자연과 환경이라는 생태학적 지향성을 가져오려는 노력과 다를 바 없음을 천명하는 셈이다.
일상과 예술이 하나가 된 세상을 알린 이는 뒤샹(M. Duchamp) 이래 일상 사물을 예술의 위치에 견인한 1960년대의 팝아트와 누보레알리즘(Nouveau Réalisme)의 작가들이었다. 전자가 대중적 이미지를 순수 예술과 합치했다면, 후자는 대중적 사물을 제시(presentation)하는 방식으로 예술의 새로운 방법론적 실천을 도모했다. 단토(A. Danto)가 워홀(A. Warhol)의 브릴로 박스를 중심으로 팝아트가 던지는 ‘일상과 예술 사이의 식별불가능성(indiscernibility)’으로부터 자신의 ‘예술종말론’을 공고히 했던 사실을 떠올려 보자. 이제 예술을 설명하는 거대 서사(master narrative)가 종결한 지점에서 미시적 서사(micro narrative)만이 꿈틀대는 예술 종말 이후의 ‘다원주의 미술’의 시대를 맞이했다. 족보와 계보가 없는 미술, 즉 ‘아버지 없는 미술’의 시대인 오늘날에 이미 일상과 예술은 구분조차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단토가 증언하듯이, 그것은 부정보다 긍정의 세계관이다. 집단 운동으로 미술을 써 내려간 거시적 서사의 시대가 종결하고 이제는 계보에 속하지 않는 예술가들이 쓰고 있는 개성 가득한 미시적 이야기들이 주요해질 따름이니까 말이다.
아서라! 일상과 예술의 관계항을 어떻게 이렇게 장밋빛으로만 볼 것인가? 보르리야르(J. Baudrillard)의 ‘미술 무가치’론이라는 것이, 일상과 예술의 뒤섞임, 즉 일상 속의 미적 포화 상태를 경계하면서 내린 회의론적 진단이었듯이, 오늘날의 일상과 예술의 불가해적 결속을 두 손 벌려 환영하면서 마냥 지켜볼 수만은 없다. 특히 테크놀로지와 인공의 일상이 가속화될수록 정원과 공원이라는 ‘인공 자연’과 같은 ‘자연과 환경의 변형적 재생산’만을 목도하게 될 뿐, 오늘날 자연의 본원적 가치는, 점차 찾을 수 없을 만큼 스러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2019지이아프의 주제인 ‘회복(回復) : 다시 숨, 쉬다’는 그래서 나왔다. 일상과 예술이 맞물리고, 여기에 변형된 자연이 자연인 양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본원적 자연의 가치와 의미를 깊이 성찰하기 위해서 ‘다시(re)’라는 화두를 꺼낸 것이다. ‘회복(回復)’이란 “원래의 상태로 돌이키거나 원래의 상태를 되찾는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돌이키고 되찾는 일에는 ‘다시’라고 하는 가치 재점검을 도모하는 용어가 자리한다. ‘다시’는 “이전 상태로 또”, “되풀이해서”라는 의미 외에도 “고쳐서 새로이”라는 개선의 지향점을 명확히 한다. 그러니 그것은 상황과 여건을 시간의 흐름을 타고 과거로 되돌리는 가역적(reversible)인 것이 아니라 ‘여기, 지금(Here and Now)’에서 과거를 잇는 방법이나 방향을 “고쳐서 새로이” 만드는 비가역적(irreversible)인 일이다. 철학자 베르그송(H. Bergson)이 이야기하듯이 원래 ‘삶의 시간’이란 경험적 지속(Durée vécue)이자 비가역적 지속(durée irréversible)이 아니던가?
생각해 보자. 생태학의 방향성은 캐롤린 머천트(C. Merchant)가 밝히고 있듯이 ‘심층생태학(Deep ecology)과 정신생태학(Spiritual ecology)에서 사회생태학(Social ecology)’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심층생태학과 정신생태학이 자연과 환경을 궤멸시킨 주범으로 인간중심주의와 이성주의로 규정하면서 그것을 반대하거나 탈주하는 방식으로 자연과 환경의 입장에 서서 ‘훼손된 자연의 복구’ 자체에 집중하면서 ‘가역적 방향성’에 집중해 왔다면, 사회생태학은 인간중심주의와 이성주의를 균형감 있게 취함으로써 오늘날 복잡다기한 사회에서의 ‘근원적인 생태로의 회복’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성찰하면서 ‘비가역적 방향성’을 견지하는 생태학을 제안한다.
이처럼 ‘자연과 환경의 회복’에 있어서 ‘다시’의 생태학이 요청하는 방향성은 비가역적이다. 달리 말해 탈과거를 지향하고 미래를 지향한다. 이러한 미래적 지향성은 현재로부터 늘 성찰하는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을 화두로 삼는다. 그래서 과거의 영광 혹은 과오로 되돌아가려고 하지는 않지만 ‘과거에 대한 재성찰’을 ‘지금, 여기’에서 끊임없이 실행하면서 다시의 문제의식을 검토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미래의 지향성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다.
그렇다. 오늘날의 생태학에는 다시 회복하기(re-covering), 다시 숨쉬기(re-breathing), 다시 쉬기(re-resting)가 절실하다. 그렇지만 다시의 실천은 과거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지금, 여기에서 ‘다시’를 성찰함으로써 미래를 향한 비가역성을 실천한다. 순차적으로 ‘재생, 재호흡, 재충전’으로 번역이 가능한, 이 ‘다시의 생태학’은 그런 면에서 통시적(通時的)이라고 하기보다 공시적(共時的)이라고 하겠다. 어떠한 시간의 간격을 종적이기보다 횡적으로 바라보는 일이 필요한 생태학인 셈이다. 과거의 과오를 들쑤시거나 미래의 전망을 모래성으로 쌓는 일이기보다 ‘미래를 향한 여기, 지금의 맥락(context)’에서 실천 가능한 생태학을 ‘주위’를 둘러보며 매일같이 실행하는 것이 주요한 것이다. 생태학자 모통(Morton)의 “생태학적 사유는 상호 연관성을 사고하는 것”이라는 진술은 이러한 비가역적이고 공시적이면서 맥락적인 생태학과 맞닿아 있다.
III. 2019 JIIAF 출품작
JIIAF는 2016년 이래 자연환경을 탐구하는 예술가 1인을 매년 초대해 왔다. 2016년 영국의 크리스 드루리(Chris Drury), 2017년 에릭 사마크(Erik Samakh), 2018년 제임스 설리번(James W. Sullivan)이 그들이다.
올해의 초대 작가 케비나조 스미스(Kevina-Jo Smith)는 호주 출신의 환경설치미술가이다. 케비나조 스미스의 작업은 올해의 주제인 ‘회복(回復) : 다시 숨, 쉬다’와 긴밀하게 연계된다. 그녀는 현장에 버려진 재료들을 자신의 작품으로 변용하는 리사이클링 작가이기 때문이다. 이번 경남 하동의 전시에서 그녀는 〈지리산아트팜〉의 커다란 건물 외벽에 쓸모없게 된 고기잡이용 ‘통(筒)발’을 무수히 집적하고 하동 바다에 버려진 그물과 인근에서 채집한 옷, 넥타이, 스커트 등 폐천을 이어 붙여 만든 거대한 커튼과 같은 작품을 설치했다. 이 야외 작품은 문명의 거처인 인공의 건물과 자연환경 사이에 위치한 하나의 인터페이스(interface)이자 인터스페이스(interspace)가 된다.
실내에는 팔다리 없는 옷과 같은 형식의 조형물을 천장에 매달아 설치했다. 천장에 유령처럼 매달린 이 설치물은 인간과 환경 사이를 연결하고 양자를 소통시키는 인터페이스이자 인터스페이스가 된다. 마치 쉬포르 쉬르파스(Support-Surface)의 지지대 없는 평면 작품의 설치 방식과 유사한 그녀의 이번 출품작은 재생(re-covering)이라는 ‘다시의 생태미학’을 실천한다. 오염된 환경 속으로 들어가 ‘버려진 것들’을 적극적으로 채집하고 다시 ‘예술적인 것들’로 재생시킴으로써 그녀가 오늘날 시대가 당면한 환경오염에 대한 위기의식을 전하는 까닭이다.
작가 윤진섭은 하동 현장에 버려진 초배지를 수거해서 오프닝 퍼포먼스를 펼쳤다. 그는 〈지리산아트팜〉 초입부터 개막식 장소에 이르는 긴 거리에 초배지를 땅바닥에 깔고 그 위에 관객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선을 그어 잇는 퍼포먼스를 완성했다. 윤진섭이 작가 노트에서, “나는 나의 삶과 예술, 나의 일상과 예술이 일치돼 이 셋이 전혀 구분되지 않는 상태를 지향한다”고 언급했던 것을 상기한다면, 그의 퍼포먼스는 자연과 환경, 예술과 사람을 서로 잇는 관계형 퍼포먼스라 평가할 수 있겠다.
작가 가람김성수는 쓸모를 다하고 버려진 여러 통발을 흰색, 노란색, 빨간색으로 채색하고 천장에 매달아 내리거나 수평으로 집적해 올려 현대적인 서낭당을 구현한다.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을 잇는 죽음의 사건 앞뒤에 상징처럼 자리한 그의 작업은 지리산의 문화적 원형과 원시 예술의 특성을 현대적으로 계승한다. 이번 출품작은 작년에 선보였던 작품 〈오방색 숲-꽃상여〉에 내재한 이승과 저승 사이의 매개적이고 제의(祭儀)적인 위상을 전개하는 또 다른 버전처럼 보인다. ‘다시 숨쉬기(re-breathing)’를 도모하는 새로운 출품작은, 그의 말처럼, 가히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는 변증법적 애증 변주곡”이라 할 만하다.
또 다른 참여 작가들의 면모는 다양하다. 작가 이경호는 해외 각지에서 ‘봉다리의 자유로운 비행’을 추적하던 퍼포먼스 기록 사진인 〈Somewhere〉 시리즈를 통해 환경오염에 경각을 울리는 작품을 선보인다. 석유 덩어리로 상징되는 ‘검은 봉다리’를 통해서 ‘다시의 생태학’을 선보이는 셈이다. 작가 이명호는 국내 및 해외를 두루 거치면서 나무 뒤에 캔버스를 세우는 일련의 사진 행위 프로젝트와 더불어 자연과 연관된 다양한 연작의 사진 작품을 통해서 ‘다시 숨 쉬기’라고 하는 이번 전시의 주제를 실현한다. 작가 임영선은 나무로 만든 다수의 인간 두상을 도열시키는 방식의 작업을 통해서 민초의 삶을 시각화한다. 늘 현재의 시점으로 내달리는 비가역적 시간 속에서 역동적 삶을 이끌어 간 역사의 주체가 바로 민중이라는 사실을 그의 군상 조각은 어김없이 증언한다. 작가 전경선은 납작한 판재 유형의 목조각의 앞뒤로 인간과 그 주위를 둘러싼 초현실주의적 풍경을 만든다. 그녀의 작품은 나무가 자라 인간이 되고, 인간이 나무가 되는 마술적 변주와 더불어 ‘자연과 인간의 공생(symbiosis)과 연관된 문제의식을 관객에게 전한다. 작가 강운은 캔버스 위에 한지와 염색 한지를 붙여 나가는 방식으로 ‘뭉게구름이 수놓은 푸르른 하늘’을 만든다. 그는 자연으로부터 온 자연적 재료를 자연에게 되돌려 주는 방식으로 자신의 회화를 완성함으로써 ‘다시의 생태학’을 완성한다. 작가 문순우는 자유로운 형태로 오려낸 나무 폐자재를 ‘판재형 부조’의 방식으로 집적하거나 병치한 세이프트 캔버스(Shaped Canvas) 회화를 선보인다. 화려한 색감의 이미지는 자연의 동식물을 그린 구상과 그것을 유추케 만드는 추상을 오가고,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든다. 작가 이영실은 옻칠이라는 전통 공예 기법으로 완성한 책가도에 장생복락도(長生福樂圖)에 등장하는 동식물을 접목한 회화를 선보인다. 문양의 형식으로 도입한 장수와 복락 그리고 지혜의 이미지는 ‘자연을 닮고자 하는 인간 욕망’으로부터 발화한 것이다. 작가 강상훈은 기다란 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의 눈과 귀 그리고 입을 가린 형상의 조각을 통해 오늘날 환경오염과 소통 부재의 불안한 상황을 선보인다. 보라! ‘자연에 반(反)하는 인간 욕망’이 낳은 현대 사회의 비극적 상황 속에서 자연은 인간에게 끊임없이 ‘다시의 생태학’을 요청한다.
IV. 전망 – 2020 JIIAF
이 글은 《2019 JIIAF》를 ‘비가역성을 지향하는 다시의 생태학’으로 해석했다. 이번 주제 ‘회복 : 다시 숨, 쉬다’의 의미는 오늘날의 자연환경을 ‘원래의 상태로 돌이키되, 지금, 여기에서 새롭게 고치는 작업’에 기초하고 있음을 전제한다. 즉 과거로 되돌아가는 가역적 상황을 도모하지 않는 현재 시점에서의 회복임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다시의 생태학’은 비가역적이다.
이전의 지이아프가 그러했듯이 올해의 행사도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자연-순수 예술-디자인-인간’의 관계를 성찰하면서 학제간 통섭을 도모하는 생태미학을 실천하고자 한다. 이 환경예술제에 내재한 통섭의 양상은 생태예술운동, 생태예술 공동체, 거주민과의 소통 등을 화두로 설정하고 있는 만큼, 사회학적 관점이 여전히 중심에 자리한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것은 예술과 사회 양자 모두를 함께 생각하는 만큼, 사유와 성찰이 다차원적이고 통섭적이다. 경남 하동 〈지리산아트팜〉 일원에서 펼쳐지는 하동 행사와 더불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의 서울 행사를 순차적으로 갖는 방식을 지속하는 것도 이러한 관점에서 읽힌다.
지이아프가 생태학이 지향하는 통섭 담론과 사회학적 테제를 강조하는 전략을 취하는 만큼 앞으로 예술과 일상, 인간과 자연 사이의 통섭의 담론을 커뮤니티 아트나 생태학적 인식에 대한 아카이빙 유형으로 전시 프로그램을 다각화시킬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물론 이러한 부분은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최근에 개관한 경남 하동의〈지리산아트팜>에서 준비해나갈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향후 이 기관이 자연환경미술 그리고 생태미술이 연구되고 실천되는 플랫폼의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으로 기대한다. 아울러 이러한 활동을 전시의 유형으로 가시화하는 지아프가 내년에는 더욱더 다양한 모습으로 풍성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