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ism-2020

J.
해체주의와 복합다원주의複合多元主義의 개관槪觀:
한규남의 작품세계


엘리노어 허트니
Eleanor Heartney – 전 미국평론가협회장_Critic_USA

한규남은 지난 1987年 어느 뉴욕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동양과 서양을 오가며 그 사이에 존재하는 문화의 차이점과 유사점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다원적이고 지구촌적인 작품창작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유년기와 성장기를 전쟁과 정치의 혼돈과 불안 속에서 지낸 그는 1972年, 27세의 나이로 미국으로 건너와 오하이오주립대학교를 졸업한 후 뉴욕 근교 시골집을 넓은 스튜디오로 개조하여 부인이며 화가인 최분자와 함께 창작생활에 전념하고 있다. 그의 짧은 이력서 가운데는 어떻게 아시아문화권의 영향이 서양의 그것과 성공적으로 작품 속에 융합되었는가, 그리고 지금의 작품세계가 있게 되기까지의 배경을 그런대로 잘 읽을 수가 있다.

그의 작품세계를 소개하자면 우선, 그는 기하학적인 원초적 기본형태를 화면 위에 죽 깔아 놓는다. 영상성影像性 만을 강조하지도 않고 또 그렇다고 실체성 만을 강조하지도 않는 독특한 이원일체二元一體의 공간 속에 독특하게 전율하는 ‘색상의 場’을 만들고 있다. 이 場의 경계와 경계가 만나는 대조면은 접선면을 이루면서 그리고 山水의 線을 형성하면서 서서히 부상浮上한다. 경계선 위에서는 이미지가 또한 형성된다. 그리고 점진적으로 사라진다. 때로는 색장色場으로 다시 환원되기도 하고 일부는 순수기본형태로만 남기도 한다. 또 골격구조들이 얽혀 새롭게 정착되어 버리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골격선만 단순하게 부상되기도 한다. 붓의 놀림은 간결•명쾌하다. 중첩되는 면은 중층으로 된다. 컬러가 쌓여지게 됨에 따라 생동감은 상승한다. 이 ‘서법적書法的 방법’과 ‘時點과 視點의 一元化’ 처리방법을 동시에 함께 적용하기 때문에 형상과 색조는 리듬의 교차로 일원화된다. 즉 二元一體性이 형성된다. 파형破形,파상破像,파묵破墨, 파색破色으로 재분산, 재결집된 조각조각의 이미지들은 가끔 일부의 서양 평론가들에 의해 서구의 모더니즘을 주도했던 거장들인 쇠라, 브라크, 드 쿠닝,몬드리앙,토비 등과 비교되기도 한다.

한규남은 자신의 작품이 후기 추상표현주의의 맥을 일부 이어가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들과는 다르다고 믿는다. 실제로 보아도 그는 서양의 모더니스트들과 주제를 다루는 자세가 다르다. 그의 관심은 서양의 모더니스트들이 걸어왔던 ‘정서의 내면’을 탐색한다거나, ‘무의식의 미로’를 해체하는 것이 아니고, 동양의 산수화가들이나 궁중화가 또는 민화나 문인화가들이 보여주었던 ‘시간과 공간의 해체적 경험성’을 강조하는 형식언어를 그 나름대로 재확인하며, 이를 서구의 전통적 형식기법과 조화시켜 가면서 조형형식구조의 접목을 시도한다. 그의 의도가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그가 최근에 들어 부썩 서울의 거리 풍경이나 산•달과 같은 전통적이고 토속적인 주제를 다루는 양식면樣式面에서 볼 때 확실히 동양의 추상성을 수용하면서 서양의 형식이론과 연결하는 접목 의도를 일구어 왔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한규남은 6세기 ‘형호’의 ‘육법이론六法理論’을 작품세계의 길잡이로 믿는다. 그러나 전통을 따르는 것이 그에게 있어서는 어떤 한계가 있는듯 싶다. 82年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현재 딜레머에 빠져있다. 이를테면 전통적인 가치기준을 따르느냐, 아니면 서구적인 아방가르드 모더니즘의 선상에서 출발하느냐 하는 근원 및 방향설정에 있어서, 모순과 딜레마에 빠져있다. 의미 있는 사실은 동양에서는 대부분 내 그림이 서구적 관점을 수용한 것처럼 보고 있는가 하면, 서양에서는 동양의 전통을 이식하고 있는 것처럼 본다. 그러나 사실 나는 어느 한쪽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다르면서 같고,같으면서 다른 동양과 서양의 이율배반적인 이원일체의 새로운 모순된 양식을 통합하여 서로 모순되지 않는 새로운 場의 확립에 진정한 내 작품세계의 관심과 의도가 있다”라고 말했다. 참으로 한규남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하여는 서양미술과 동양미술에 있어서 개념의 상관관계를 재점검하여 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구의 모더니즘은 전혀 회생 가능성이 없는 불타버린 예술전통의 잿더미에서 마치 불사조처럼 기적의 회생력을 발휘하여 잿더미를 헤치고 하늘로 상승하는 피닉스로 비유한다. 또한 전통과 모더니티의 관계를 상극과 대립의 관계로 보는가 하면, 이유 없이 부모에게 불복하고 불효하는 자식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런데 ‘동양의 예술가들에게 그들이 처해있는 상황과 국면을 이해하는 쪽에서 본다면, 꼭 이런 일반적 공식이 적용되지 않는다. 때로는 전통과 모더니티의 관계는 친화적 관계로 놓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 경우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즉 옛것을 통하여 오늘을 보는 친화적 관계에 선다. 다시 말하면 서구적 해석이 잘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보자. 오늘날 결국 서양의 고전적 전통에 입각하여 서구의 모더니스트들이 설정하려 했던 새로운 19세기의 서구모더니즘의 규준은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이들은 대개 일차적 원근법주의 또는 주관과 대상을 절대 분리하여 생각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지배적이다. 이 경우, 즉 19세기 말엽 대부분의 서구의 모더니스트들은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동양의 일원론적 영향을 받았다. 이때는 입장과 방향이 동양의 전통적 규준과 같다. 20세기 서양의 일원론적 평면주의 그리고 주제와 여백의 이원일체성 등은 서구모더니스트들이 동양에서 영향을 받았다. 이는 동양의 주객합일主客合一과 귀일사상歸一思想의 일원론적 관점과 통한다. 그런 까닭에 오늘날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시아계 작가들의 입장과 서구모더니즘의 새로운 시각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독특한 논리적 배려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동서東西는 그 뿌리는 다르지만 동질성이 있기 때문이다. 서구모더니스트들이 취하는 입장,즉 그들의 목표와 양식은 전통이 부정되고 마냥 거부되는 것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재발견과 재창조의 원천으로 삼는 계승의 의미를 갖기도 한다. 이는 모더니즘이 본래 취했던 전통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자세는 아닌 것이다. 따라서 모더니즘을 계승하고 수용하려는 일부의 아시아계 작가들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있어 통념적인 서구의 평론가들은 오류를 범하기 쉽다. 항상 전통과 역사를 대립과 부정의 관계로만 보았던 비평적 관점으로는 중요한 문제와 뉘앙스를 포함하고 있는 이들의 의도와 진정한 의미와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한규남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다.

주도면밀하게 동서의 동질적인 요소 혹은 상호관계성 그리고 복합다원적인 근원을 형식면에서 추구하고 접목시키고 있다면 서구의 비평적 논리와 관점이 그의 경우에 있어서는 수정되어야 된다. 서구적 전통 속에 보이는 모더니티의 관점중 전통의 개념은 그에게 있어서는 달리 보인다. 오히려 내적으로는 전통을 수용하며 외적으로는 동서문화를 통합하려 하고 있다. 한규남의 작품들은 이러한 사실들을 증거하는 좋은 예가 된다. 그의 작품은 東과 西가 만나는 장소이다. 그의 작품은 동과 서의 회화적 이슈들을 자연스럽게 재점검하고 있다. 한때 그는 완전추상주의자였다. 지금은 자주 풍경의 이미지를 단순기하학적인 형태로 골격화骨格化 한다. 때로는 기능적이고 구조적인 현상을 차용하기 위하여 전통적인 민화의 모티브를 즐겨 쓴다. 뉴욕 센츄럴파크 공원의 자연과 고층건물들을 마치 동양작가들이 전통산수를 먹墨과 화선지에 육법六法의 원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다루듯 ‘骨法’을 단순기하학적인 형태의 추상적 복합적 모티브들만으로 구성된 골격구조로서 산수화처럼 서양화를 처리한다. 어떤 페인팅온 반대로 서구의 점묘파點描派 관점에서 한국의 전통적 민화를 재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배경이나 추상이나 그의 작품 속에서 규준規準은 ‘사상과 존재를 의시凝視하는 창문’으로서의 영상적 공간과 ‘기능적이고 평면적인 모더니스트들의 조형공간’과의 중간쯤 되는 場과 地點을 오가며 構成되는 세계이다. 그래서 심장이 맥동하여 반복되는 것처럼 이 두 사이를 오가며 심상心像과 사의寫意, 형사形似와 사의는 하나로 통일된다.

그의 작품에 보이는 특징은 조형문법과 형식언어로서의 특징이다. 한규남은 원초적 형태, 작은 원, 사각형 혹은 직사각형 등을 수없이 포개 가면서 가끔 골법구조의 집올 그리기도 한다. 그는 이미지를 곧 구조라고 본다. 혹은 구조 그 자체가 이미지가 되는 그런 일원적 세계를 추구한다. 이 속에서 되풀이된 色과 형상은 요지경처럼 화면 밖으로 전율하며 이어진다. 90년에 제작한 청평 작품 시리즈들 중 호수와 山과 나무 십장생 산수화는 햇살을 받은 수면이 반은 물속에 투영된 그림자가 춤을 추듯 율동하는 반사광선의 영상과 실제가 교차하는 독특한 화면공간을 구축한다. 면과 면들이 만나면서 이미지의 외곽형상선이 밖으로 돌출되며 부상한다.

최근들어 이미지와 영상映像적 공간 사이에 있는 그리드 즉 격자구조들이 구성물들을 항상 토대로 하고 있는 가로, 세로,수평, 수직 그리고 대각의 극極, 대大,소小, 종從,횡橫 구조를 회전시킴으로써 더욱더 복합다양한 함수관계를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어떤 경우에는 그리드가 복수로 서로 다른 각도로 이중삼중 포개지면서 아주 미세하게 세분된 면과 정교한 분할점들을 해체하여 만들어낸다. 이때의 이미지는 따라서 이 구조가 회전하거나 포개지면서 만들어내는 광선의 분말과 같은 작은 점들로 분할되거나 待反되어진다. 이렇게 다양한 방법을 취함으로써 아주 놀랄만한 다양한 효과를 이루어내고 있다. <내 마음 全部>의 작품의 경우 이미지는 파형破形과 파상破像의 좋은 예이다. 화면 전체에 분산된 에너지의 표질감은 신비스런 음영을 보이며 겨우 보일 정도다. 다른 그림들은 이미지의 경우에 부상되었다가 즉각 사라진다. ‘산’온 예를 들어 관객의 시선과 캔버스 사이에 부상浮上, 분산돼 있는 것처럼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무수한 공간 가운데 떠 있는 것 같다. 山의 외곽선은 보이나 이미지 자체는 해체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서 정체되어 있으면서 움직이고 있는듯 하다. 〈十長生 變形 4〉는 아주 극단적인 경우이다. 의도된 이미지 즉 (형사사의形似寫意)는 표현되어 있지만 그리드는 중층법을 사용하고 있다. 복합, 분할, 회전시키면서 사슴 등의 이미지는 추상성 가운데 같이 명료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끄집어 나타내고 있다.

결국 한규남의 모든 작품들은 총체적으로 볼 때 다양한 시도는 궁극적으로 다양한 시각적 확산공간의 구현에 있다. 초기작품들은 선을 원초적 형태의 원, 사각형, 삼각형의 원색조에서 평면성과 영상성影像性, 최근에는 격자회선을 도입, 또다른 질서와 무질서 속에 내재하는 복합다양한 기운생동을 골법구조화 하고 있다. 구조 • 이미지를 통일하면서 그는 복합다양한 역동적인 인식과정을 체험과정으로 전환하는 여러 단면을 보여준다. 결국 주객主客의 인식에서 총체적 합일관계에 서게 된다.

한규남의 작품을 점묘파點描派의 거장 조지 쇠라의 점철된 교착공간交着空間에 피엣 몬드리앙의 율동적인 단절공간에 비유하는 것은 잘못됐다. 실상〈맨하탄 부기우기〉라는 작품은 몬드리앙을 의식했던 것 같다. 어떤 작품들은 어쩌면 세잔느와 같은 입체파 작가들이 그린 부서진 형체,여백의 사용, 분산된 공간과 얼핏 보아도 비숫한 점이 있다지만, 이 경우 비교, 점검, 대조하기 위하여 이들의 역사적 문제점들을 차용했을 뿐이다. 한규남은 이들보다 다른 세계를 짚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구인들의 작품에서 보이지 않는 기운과 생동성, 즉 힘으로 충만된 공간의 場을 구성하고 있는 점에서 확실히 점묘파나 입체파 작가들과 확실히 다르다. 그리고 구조 곧 이미지이며 먹墨과 色을 하나라고 보는 일원론적 관점이 그들과 확연히 다르다.

서구적 관점에서 보면 한규남의 작품은 그들의 통용된 일상적 모델의 규준으로 분석되기 일쑤지만,그런데도 이상하리만치 달리 보이고 있는 이유는 뭘까? 작가가 동양인이기 때문일까? 동양은 이렇게 신비스럽기만 한가? 영국의 미술사가 노만 브라이슨이 15세기 중국 선화禪畵의 효과를 정의하는 과정에서 주목할만한 동양의 회화전통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이것을 인용해 보면 아마 이해가 더 빠를 것이다. 브라이언은 “묵화墨畵나 禪畵의 경우 궁극적인 해결점이 무엇이냐면 작가가 형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깨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지를 비형상화 함으로써만 이원일체의 관점으로 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때 비로소 무질서와 무작위적이고 무한성 속에 존재하는 질서의 세계를 개관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작가가 잉크를 파묵하는 이유는 이미지의 고정형태에서 벗어나서 그 여백이 갖고 있는 입체적 그리고 복합적인 에너지의 형상체로서의 이미지로 전환해 버리고자 하는 까닭인 바 이때야 말로 형상과 아이디어가 동일한 시점時點에서 사방으로 흐트러진다. 힘은 마치 오케스트라의 음향처럼 사방에서 모이고 분산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한규남의 이미지는 골격을 형성하는 구조 밖에서, 여백이나 액자 밖에서, 존재하는 우주의 힘에 의하여 깨어지고 얽혀지고 부상浮上된채 만들어져서 화면 안으로 주사위처럼 던져진 상태로 투사投射되는 것이다. 한규남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이 浮上하는 이미지는 소우주 밖에서 형성된다. 물론 화면 밖에서도 또는 빈 공간에서도 파상 분산된다. 이미지의 가장자리는 면으로 대조되어 경계선을 이루지만 이때의 경계선은 또다시 時點과 視點이 구조와 이미지가 色과 농담(墨)이 통일되어 환원되는 지점이 된다. 이 이원일체이며 주객합일의 공간은 돌출된다든가 가라않지도 않고 정극복동상호기한靜極復動相互其根의 관계, 즉 움직임과 정체성이 하나의 근원으로 모이게 되는 관계에 선다. 즉 동일한 근원에서 일원론적 관점과 이원론적 관점이 새롭게 하나의 視點과 時點에서 통일되고 결국 이미지로 浮上된 상태에 이른다. 이때에 이미지는 추상抽象과 구상具象을 통합한 이미지일 것이다. 오늘날 그의 작품은 브라이언이 말하는 시각적 확산공간이다.

한규남의 작품은 東西文化의 접맥接脈과 실체를 보여준다. 오늘날 그의 작품은 가치의 전이, 수용, 확산, 통합, 접목, 해체 둥둥 다원적이고 복합•근원적인 문화접맥接脈의 예를 보여주고 있다. 국제적, 다국적, 문화적 복합 다원주의의 한 모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는 좁아지고 文化는 넓어져야 하는 오늘날 그의 작품이 다각도에서 분석 • 연구되어져야 할 것인즉 그의 작품은 긍정적인 복합다원주의複合多元主義의 한 모델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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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dging Worlds 一 the paintings of Kyu-Nam Han

by Eleanor Heartney_Critic_USA

In a 1987 interview, Kyu-Nam Han told an American writer “l live between two worlds. My concern is global.” Born in Korea, liis youth and adolescence in Seoul were intermingled with the Korean War and the later political unrest. In 1972, at the age of 27, lie came to the United States where he studied art at Ohio State University before settling down as an artist in New York. Today he lives and works with his wife, painter Boon Ja Choi, in a spacious farm-house turned studio about ail liour outside of New York City.

This brief biography helps explain the remarkable synthesis of Western and Asian influences visible in his work. Building up layers of small geometric shapes, he creates fields of color which vibrate withui a peculiar space which is neither simply illusionary or literal. In some works, the shapes and colors begin to define landscape images on the verge of disappearance. In others they become tightly interlocked compositions whose basic, repeated motif is a simple outlined rooftop.

The brushstrokes are quick and crisp, increasing the sense of movement created by the overlapping flecks of color. This gestural quality, along with the “all over” field created by rhythmic alternations of form and color and the fracturing of images into slivers of jewel like color have lead many critics to compare Han’s work to that of various masters of Western modernism. These range from Seurat and Braque to de Kooning, Mondrian and Mark Tobey.

Han himself describes his work as a kind of “Post Abstract Expressionism,“ noting that, while the appearance of his work brings to mind those illustrious predecessors, his concerns are rather different. He is less concerned with probing the emotional depths or unlocking the secrets of the unconscious, than in evoking a nonlinear experience of space and time. Such concerns link his work with that of traditional Korean folk art and literary painting, a connection made even clear with his adoption, in some recent paint of the traditional motif of mountains and moon.

I Ian likes to point to Hsieh Ho’s 6th century Six Canons for the Artist as the guiding principles behind his work. lie says, “For me there is a dilemma between returning to my traditional values or going forward and expanding on Western avant-gardism. Curiously, Easterners think I create from a Western viewpoint but, paradoxically, Western critics regard my work as being strongly rooted in the oriental tradition. Consequently, I feel I belong to neither culture but perhaps to both.“

Indeed, in order to understand Han*s work, it is necessary to reexamine the relationship between western and eastern concepts of art.

It is sometimes imagined that Western modernism arose, phoenix like, from the embers of a dying aesthetic tradition. A related myth pictures the early modernists as rebellious sons dismantling the world of their fathers. But while Western artists may find it convenient to see modernity and tradition as opposites, such formulations are not so use fill in understanding the situation of contemporary Asian artists. After all, the classical traditions against which Western modernism defines itself – the system of one point perspective, for instance, or the absolute separation of subject and object – are themselves alien to traditional Eastern thought. In fact, the modernist revolt against these precepts was lead by artists inspired, at least in part, by their contact with Eastern art. Flatness, a focus on gesture or brush stroke, and the merging of object and surrounding space are characteristics both of traditional Asian painting and of the Post Impressionism or Abstract Expressionism

Hence, for the contemporary Asian artist, an engagement with Modernism is less a matter of rejection than of rediscovery and reinvention. Tradition looms, not as a fierce and overbearing parent who must be battled and overcome, but as a source of inspiration and sustenance. As a result, works by modernistically inclined Asian artists often contain nuances, which are likely to be missed by人Western critics entranced by simplistic oppositions between modernity and tradition or East West.

The works of Kyu-Nam Han arc evidence of this fact. His paintings merge aspects of East and West. Once completely abstract, they now frequently employ landscape as an armature on •

which to hang complex mosaics of simple geometric shapes. In some cases the underlying scenes arc western – the wall in his studio currently holds a pair of postcard views of nearby New York City which have served as the motif for recent works. Other paintings present pointillist versions of the traditional Korean motif of mountains and moon.

However, whether based on landscape or abstract patterns, Han’s compositions are: all characterized by a pulsating space which exists somewhere between the traditional Western “window on the world” and the flatly functional modernist picture plane. Han creates his compositions by building up layers of small circles, rectangles, squares and, iii one series of work, rudimentary house shapes. These overlapping flecks of color create kaleido-scopic effects which vibrate across canvas surface. At times one is reminded of the peculiar fractured space of a lake surface in which the dancing reflections above merge with the half glimpsed shadows of objects below. When landscape images emerge from these fields, they seem as unstable as such momentary configurations of sunlight and shadow.

Recently he has begun to further complicate the relationship between image and picture plane by rotating the basic grid structure on which his compositions have always been based. In some works, multiple grids appear, laid over each other at different angles to create a filigree effect behind which the image begins to dissolve into dappled points of light. By introducing this additional variable, Han is able to achieve a remarkable diversity of effects. In a work like “All My Heart,” the image almost disappears beneath the filiments of paint, becoming perceptible as a mysterious shadow visible only to viewers who position themselves at some distance from the painting. In other paintings, images seem to hover between emergence. and disappearance. In “Mountain,” for instance, the underlying contours of a pair of mountain peaks remain visible yet disembodied, as if they, float in some indefinable space between eye and canvas. And filially, at the other extreme, in a work like “Long Life IV,” Han allows tlic underlying image, here a forest scene scattered with deer and birds, to remain vivid and concrete.

Taken together, these various approaches demonstrate Han’s concern with the varieties of pictorial space. Moving from the earlier works, in which images were splintered into tiny circles, squares and triangles of brilliant color to his current exploration of the grid as an element which both orders and disrupts our visual perception, he displays an increasingly sophisticated awareness of the complex dynamic by which the eye understands the representations of art.

Commentators frequently compare Han’s work with the dappled color fields of Georges Seurat or the rhythmic interlocking of line and color in the work of Piet Mondrian (one painting from 1987 is in fact named “Manhattan Boogie Woogie.” They also recall the fragmented forms and splintered planes explored by artists like Paul Cezanne and George Braque.

Still, it would clearly be a mistake to interpret these works solely in terms of the modernist analysis of form and space. Going beyond cubistic fracturing, they reconstitute space as an energy field or an all enveloping ether which has little in common with most western models.

For a Western viewer, these paintings by Han are at once familiar, lending themselves to analysis in terms of the usual models – and tantalizingly strange. It is tempting, of course, to attribute that strangeness to the influence of the “mysterious East.” A more illuminating explanation is hinted at in British art historian Norman Bryson’s description of the efiect of 15th century Ch’an painting. Bryson remarks, “In the case of the flung-ink painting, ch’an’s solution is to disfigure the image, the bipolar view, by opening on to the whole force of randomness… The flinging of ink marks the surrender of the fixed form of the image to the global configuration of force that subtends it. Eidos is scattered to the four winds. The image is made to float on the forces which lie outside the frame; it is thrown, as one throws dice. What breaks into the image is the rest of the universe, everything outside of the frame.” The floating images in Han*s work, whose edges dissolve into a ground which is neither in front of or behind them, suggest just such an expanded visual field as Bryson describes.

Han’s paintings demonstrate some of the possibilities which may result from the cross fertilization of cultures. Employing an innovative approach to tradition and an openness to influences across national and cultural lines, they provide a model of multicultural exploration of the most positive sort. As the world becomes smaller and the culture increasingly global, the example of Kyu-Nam Han is well worth study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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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man Bryson, “The Gaze in the Expanded Field” in Ha! Foster, ed. Vision and Visuality, Seattle: Bay Press, 1988 p. 103

Source: Excerpt from article ‘Blue Hill essay’ introduction to the catalogue of an exhibition; Kyu Nam HAN Paintings, Yongjtn HAN Sculpture, Boon Ja CHOI paintings at the Blue Hill Cultural Center, Pearl River, New York, February 1-May 30, 1991. The original article included twelve illustrations, some of which have been reprinted by permission of the author and Blue Hill Cultural Center, © Eleanor Heartney.